얼굴 없는 인간’ 방황, 낯선 체험, 기이한 아름다움이…
피에르 위그의 '리미널’'(2024~진행 중)의 얼굴 없는 인간 형상. 문소영 기자
지금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 가면 ‘실시간 현재진행형 SF’를 체험하게 된다. 거대한 스크린에 어둡고 광활한 공간이 펼쳐져 있고 나체 인간 형상 하나가 공허에서 탄생한 태초의 인간처럼 방황한다. 그 형상은 다른 부분은 온전하지만 얼굴이 있어야 할 부분이 검게 패어 있다. 이 형상은 정적으로 움직이다가 갑자기 살충제 맞은 파리처럼 몸부림치며 관람객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이 인간 형상은 주변환경, 예를 들어 관람객 수, 온도, 빛의 양 같은 정보를 받아서 특정한 몸짓을 한다. 그 몸짓을 인공 신경망 기계가 읽어서 인간 형상의 다음 움직임-어느 쪽으로 갈지, 앉을지 일어설지 등등-을 지시한다. 이 인간 형상은 감각 세계, 즉 우리가 작품을 바라보는 현실 세계와 (두뇌 역할을 하는) 기계 사이의 중간에 있다. 얼굴도 없고 두뇌도 없어서 자기 주관(subjectivity)도 없고 자아도 없다. 단지 ‘진동하는 막(membrane)’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작가 피에르 위그(62)는 작품 ‘리미널(Liminal)’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변화가 일어나는 경계’를 뜻하는 ‘리미널’은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미술가 위그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의 제목이기도 하다.
‘휴먼 마스크’ 원숭이…“가장 슬프고 감동적”
우리는 인간 형상을 보면 인간으로 생각하며 감정 투영을 하기 쉬운데 그런 고정관념을 깨주는 작품이 ‘리미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관람자와 상호작용을 하니 그저 물체도 아닌 셈이다. 위그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애매함과 당혹스러움을 즐긴다고 했다.
피에르 위그의 ‘주드람 4’ (2011). 소라게가 소라 껍데기 대신 브랑쿠시의 유명한 조각 두상 '잠자는 뮤즈'의 복제품을 얹고 다닌다. 문소영 기자
‘리미널’ 옆에는 수족관이 있고 바위 틈으로 반추상화된 인간의 얼굴 형상이 가라앉아 있다. 루마니아 조각 거장 브랑쿠시(1876~1957)의 유명한 조각 두상 ‘잠자는 뮤즈’의 복제품이다. 그런데 두상이 슬금슬금 움직인다! 잘 보면 살아있는 진짜 소라게가 속이 패인 그 조각을 소라 껍데기 대신 쓰고 기어다니고 있다. 작품 ‘주드람 4’(2011)는 초현실주의 미술의 ‘낯익은 사물들의 낯선 조합’인 데페이즈망을 연상시키는 기이하게 아름다운 모습이다. 문명이 멸망한 후의 풍경 같기도 하다.
'종말 이후의 풍경' 같은 모습은 2014년작 필름 ‘휴먼 마스크’에서 강화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폐허가 된 후쿠시마 마을의 한 식당에 홀로 남은 원숭이의 모습을 담았다. 이 음식점은 원래 세 마리의 원숭이가 서빙하는 곳으로 유명했는데 작가가 찾았을 때는 한 마리만 남아있었다고 한다. 어린 소녀의 가면을 쓴 원숭이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중간적 존재로서 원숭이처럼 뛰기도 하고 인간처럼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기도 한다. 기자가 만난 관람객들 다수가 “가장 감동적이고 슬펐다”고 평한 작품이다. 인류가 핵으로 멸망하면 살아남은 존재는 혹시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작가는 “내 작품이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문명 붕괴와 종말 이후의 세계를 다루는 SF 장르)’로 분류되는 것을 경계한다”면서 “그런 장르의 작품들은 매우 전형적인 세계관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나는 다만 새로운 다른 우주론이 등장하고 생명의 다른 방식이 등장하는 것에 흥미가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피에르 위그의 영상작품 '휴먼 마스크'(2014) [사진 리움미술관]
그는 바로 미술현장에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하는 작가다. 살아 있는 유기체,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또한 그의 작업은 완결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 그런 작업으로 2012년 카셀 도큐멘타와 201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서 명성을 떨쳤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신작과 구작 중, 리움미술관과 세계적인 컬렉터이자 사업가인 프랑수아 피노 회장의 수집품으로 이루어진 피노 컬렉션이 공동 제작 지원한 신작 ‘리미널’ ‘이디엄’ ‘카마타’도 모두 이러한 작업이다.
‘이디엄’은 마스크를 쓴 인간 퍼포머들이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작품이다. 이 마스크는 생성형 AI와 센서가 장착된 존재로서 주변 정보를 수집해 점차 언어를 생성해서 발화한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의 말대로 "이 마스크는 그것을 쓰고 다니는 인간들과는 아무 교류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마스크들끼리 교류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저 마스크를 이곳 저곳으로 옮기는 "로봇 같은" 역할만 한다. 마스크가 주체가 되고 인간은 그것을 나르는 도구인 셈이다. 즉 인간과 물건의 관계,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가 전복·도치된 것이다.
피에르 위그의 ‘이디엄’(2024~진행 중). 마스크를 쓴 인간 퍼포머가 리움미술관에 앉아 있다. 마스크가 주체이고 인간 퍼포머는 마스크를 나르는 역할만 한다. 문소영 기자
중앙SUNDAY는 공식석상에 잘 나오지 않는 작가를 어렵게 만나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인간과 비인간 존재-동물, AI 등-사이의 경계를 탐구하는 것 같다. 결국은 근본적으로 그 경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A. “경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생명의 다른 구성, 주체의 다른 구축에 관심이 많다. 우리(인간)가 구축된 방식, 우리가 우리를 구축하는 방식이 경계라고 할 수 있으며, (비인간 존재와) 공존하고 때로는 긴장을 형성할 수 있다. 15년 전에 도큐멘타를 준비할 때, 나는 예술의 공간에 들어가 주체로서 객체를 바라보는 그런 관계성에 질려 있었다. 그런 관계를 바꿔보고 싶었다. 스스로 진화하는 존재를 가져다 놓고 싶었다. 고정되고 완결된 것을 피하고 시간에 따라 계속 변하는 것을 원했다. ‘동물은 어떨까. 재미있겠다. 특정 유형의 행동과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이 있으니까.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도 재미있겠다.’ 그런 식으로 나는 작품(creation)을 생산하는 대신 피조물(creature)을 생산하고자 노력해왔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피에르 위그. [사진 리움미술관]
Q. 평소에 과학자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나.
A. “내가 관심 있는 분야라면 그렇다. 뉴욕 록펠러대학교의 알리 브리반루 교수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는 분자 발생학으로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구성되기 시작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그들은 생명을 설계하는 사람들이다(록펠러대는 생명과학 분야 세계 최강으로 손꼽히며 브리반루 팀은 ‘합성 배아’ 연구로 유명하다). 그 대화는 늘 사실에 기초한 토론이기보다 가능성을 바탕으로 한 스페큘레이션(speculation 사변, 추측)인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SF를 듣는 것처럼 즐겁다.”
리움·피노컬렉션 ‘리미널’ 등 공동 제작 지원
Q. SF를 좋아하는가?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가? 당신의 전시도 일종의 SF 같은데.
A. “그렇다. SF는 늘 내가 사랑해온 분야다. 필립 K 딕(1928~1982)을 특히 좋아한다 (딕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의 원작 소설가). 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SF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웃음) 하지만 좁은 의미의 SF라기보다 보다 초현실적이고 상징적인 것. 이를테면 문학사를 보면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도 이미 SF였다. (내 전시는) 사이언스 픽션으로서의 SF라기보다는 스페큘레이티브(사변적) 픽션으로서의 SF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Q. ‘리미널’이 얼굴이 없는 이유는.
A. “이 프로젝트를 ‘만약 우리가 얼굴도 없고, 두뇌도 없고, 세계도 없다면, 우리는 무엇일까’라는 가설적, 사변적 질문에서 시작했다. ‘주관도 없고, 인식할 세계도 없는 인간 존재란 과연 무엇일까?’ 그래도 그녀가 인간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정도 우리 자신과 연결시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완전히 동일시할 수도 없다. 저런 존재는 현실에서 불가능하니 말이다. 불가능과 연결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작품의 포인트다.”
피에르 위그의 '주드람 4'( 2011) [사진 리움미술관]
Q. 이 전시를 지난해 베니스에서 처음 보았을 때 (베니스비엔날레 기간에 피노 컬렉션의 미술관인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먼저 열렸다.) 영국 문화평론가 마크 피셔(1968~2017)의 저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The Weird and the Eerie)』이 떠올랐다.
A.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다. 내게 매우 중요한 책이다. 그 이유는, 마크 피셔가 다루는 영역이 기존의 범주화에 포함되지 않는 어떤 공간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존재해야 할 것이 부재하고, 부재해야 할 것이 존재하는 그런 상황이다(피셔는 존재해야 할 것이 부재할 때 으스스(eerie)하며, 부재해야 할 것이 존재할 때 기이하다(weird)고 설명한다).”
Q. 피셔는 이렇게 말했다.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의 공통점은 이상한 것에 대한 사로잡힘이다…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상한 것이다. 그것은 표준적인 감각·인지·경험 너머에 있는 것, 외부에 대한 매혹과 관련이 있다.” 이것이 당신이 예술을 하는 근본적인 동기나 관심인가.
A.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어떤 ‘영역(zone)’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그 영역에서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분류체계가 무너지거나, 흐릿해지거나, 혹은 경계를 넘어 새어나가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결국 관객은 더 복잡한 무언가와 마주하게 된다. 그 목적은 단순히 불편함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질문의 영역’으로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단순히 도발(provoke)하는 것과는 다르다. 도발이라는 것은 오히려 쉽고 매우 진부한 수법일 수 있다. 그런 종류의 도발은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만약 '도발하다'라는 개념을 '무언가를 촉발시키다(trigger)'라는 의미로 본다면, 물론 그 점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9081
얼굴 없는 인간’ 방황, 낯선 체험, 기이한 아름다움이…
지금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 가면 ‘실시간 현재진행형 SF’를 체험하게 된다. 거대한 스크린에 어둡고 광활한 공간이 펼쳐져 있고 나체 인간 형상 하나가 공허에서 탄생한 태초의 인간처럼 방황한다. 그 형상은 다른 부분은 온전하지만 얼굴이 있어야 할 부분이 검게 패어 있다. 이 형상은 정적으로 움직이다가 갑자기 살충제 맞은 파리처럼 몸부림치며 관람객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이 인간 형상은 주변환경, 예를 들어 관람객 수, 온도, 빛의 양 같은 정보를 받아서 특정한 몸짓을 한다. 그 몸짓을 인공 신경망 기계가 읽어서 인간 형상의 다음 움직임-어느 쪽으로 갈지, 앉을지 일어설지 등등-을 지시한다. 이 인간 형상은 감각 세계, 즉 우리가 작품을 바라보는 현실 세계와 (두뇌 역할을 하는) 기계 사이의 중간에 있다. 얼굴도 없고 두뇌도 없어서 자기 주관(subjectivity)도 없고 자아도 없다. 단지 ‘진동하는 막(membrane)’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작가 피에르 위그(62)는 작품 ‘리미널(Liminal)’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변화가 일어나는 경계’를 뜻하는 ‘리미널’은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미술가 위그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의 제목이기도 하다.
‘휴먼 마스크’ 원숭이…“가장 슬프고 감동적”
우리는 인간 형상을 보면 인간으로 생각하며 감정 투영을 하기 쉬운데 그런 고정관념을 깨주는 작품이 ‘리미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관람자와 상호작용을 하니 그저 물체도 아닌 셈이다. 위그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애매함과 당혹스러움을 즐긴다고 했다.
‘리미널’ 옆에는 수족관이 있고 바위 틈으로 반추상화된 인간의 얼굴 형상이 가라앉아 있다. 루마니아 조각 거장 브랑쿠시(1876~1957)의 유명한 조각 두상 ‘잠자는 뮤즈’의 복제품이다. 그런데 두상이 슬금슬금 움직인다! 잘 보면 살아있는 진짜 소라게가 속이 패인 그 조각을 소라 껍데기 대신 쓰고 기어다니고 있다. 작품 ‘주드람 4’(2011)는 초현실주의 미술의 ‘낯익은 사물들의 낯선 조합’인 데페이즈망을 연상시키는 기이하게 아름다운 모습이다. 문명이 멸망한 후의 풍경 같기도 하다.
'종말 이후의 풍경' 같은 모습은 2014년작 필름 ‘휴먼 마스크’에서 강화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폐허가 된 후쿠시마 마을의 한 식당에 홀로 남은 원숭이의 모습을 담았다. 이 음식점은 원래 세 마리의 원숭이가 서빙하는 곳으로 유명했는데 작가가 찾았을 때는 한 마리만 남아있었다고 한다. 어린 소녀의 가면을 쓴 원숭이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중간적 존재로서 원숭이처럼 뛰기도 하고 인간처럼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기도 한다. 기자가 만난 관람객들 다수가 “가장 감동적이고 슬펐다”고 평한 작품이다. 인류가 핵으로 멸망하면 살아남은 존재는 혹시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작가는 “내 작품이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문명 붕괴와 종말 이후의 세계를 다루는 SF 장르)’로 분류되는 것을 경계한다”면서 “그런 장르의 작품들은 매우 전형적인 세계관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나는 다만 새로운 다른 우주론이 등장하고 생명의 다른 방식이 등장하는 것에 흥미가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바로 미술현장에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하는 작가다. 살아 있는 유기체,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또한 그의 작업은 완결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 그런 작업으로 2012년 카셀 도큐멘타와 201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서 명성을 떨쳤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신작과 구작 중, 리움미술관과 세계적인 컬렉터이자 사업가인 프랑수아 피노 회장의 수집품으로 이루어진 피노 컬렉션이 공동 제작 지원한 신작 ‘리미널’ ‘이디엄’ ‘카마타’도 모두 이러한 작업이다.
‘이디엄’은 마스크를 쓴 인간 퍼포머들이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작품이다. 이 마스크는 생성형 AI와 센서가 장착된 존재로서 주변 정보를 수집해 점차 언어를 생성해서 발화한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의 말대로 "이 마스크는 그것을 쓰고 다니는 인간들과는 아무 교류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마스크들끼리 교류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저 마스크를 이곳 저곳으로 옮기는 "로봇 같은" 역할만 한다. 마스크가 주체가 되고 인간은 그것을 나르는 도구인 셈이다. 즉 인간과 물건의 관계,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가 전복·도치된 것이다.
중앙SUNDAY는 공식석상에 잘 나오지 않는 작가를 어렵게 만나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인간과 비인간 존재-동물, AI 등-사이의 경계를 탐구하는 것 같다. 결국은 근본적으로 그 경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A. “경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생명의 다른 구성, 주체의 다른 구축에 관심이 많다. 우리(인간)가 구축된 방식, 우리가 우리를 구축하는 방식이 경계라고 할 수 있으며, (비인간 존재와) 공존하고 때로는 긴장을 형성할 수 있다. 15년 전에 도큐멘타를 준비할 때, 나는 예술의 공간에 들어가 주체로서 객체를 바라보는 그런 관계성에 질려 있었다. 그런 관계를 바꿔보고 싶었다. 스스로 진화하는 존재를 가져다 놓고 싶었다. 고정되고 완결된 것을 피하고 시간에 따라 계속 변하는 것을 원했다. ‘동물은 어떨까. 재미있겠다. 특정 유형의 행동과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이 있으니까.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도 재미있겠다.’ 그런 식으로 나는 작품(creation)을 생산하는 대신 피조물(creature)을 생산하고자 노력해왔다.”
Q. 평소에 과학자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나.
A. “내가 관심 있는 분야라면 그렇다. 뉴욕 록펠러대학교의 알리 브리반루 교수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는 분자 발생학으로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구성되기 시작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그들은 생명을 설계하는 사람들이다(록펠러대는 생명과학 분야 세계 최강으로 손꼽히며 브리반루 팀은 ‘합성 배아’ 연구로 유명하다). 그 대화는 늘 사실에 기초한 토론이기보다 가능성을 바탕으로 한 스페큘레이션(speculation 사변, 추측)인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SF를 듣는 것처럼 즐겁다.”
리움·피노컬렉션 ‘리미널’ 등 공동 제작 지원
Q. SF를 좋아하는가?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가? 당신의 전시도 일종의 SF 같은데.
A. “그렇다. SF는 늘 내가 사랑해온 분야다. 필립 K 딕(1928~1982)을 특히 좋아한다 (딕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의 원작 소설가). 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SF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웃음) 하지만 좁은 의미의 SF라기보다 보다 초현실적이고 상징적인 것. 이를테면 문학사를 보면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도 이미 SF였다. (내 전시는) 사이언스 픽션으로서의 SF라기보다는 스페큘레이티브(사변적) 픽션으로서의 SF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Q. ‘리미널’이 얼굴이 없는 이유는.
A. “이 프로젝트를 ‘만약 우리가 얼굴도 없고, 두뇌도 없고, 세계도 없다면, 우리는 무엇일까’라는 가설적, 사변적 질문에서 시작했다. ‘주관도 없고, 인식할 세계도 없는 인간 존재란 과연 무엇일까?’ 그래도 그녀가 인간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정도 우리 자신과 연결시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완전히 동일시할 수도 없다. 저런 존재는 현실에서 불가능하니 말이다. 불가능과 연결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작품의 포인트다.”
Q. 이 전시를 지난해 베니스에서 처음 보았을 때 (베니스비엔날레 기간에 피노 컬렉션의 미술관인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먼저 열렸다.) 영국 문화평론가 마크 피셔(1968~2017)의 저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The Weird and the Eerie)』이 떠올랐다.
A.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다. 내게 매우 중요한 책이다. 그 이유는, 마크 피셔가 다루는 영역이 기존의 범주화에 포함되지 않는 어떤 공간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존재해야 할 것이 부재하고, 부재해야 할 것이 존재하는 그런 상황이다(피셔는 존재해야 할 것이 부재할 때 으스스(eerie)하며, 부재해야 할 것이 존재할 때 기이하다(weird)고 설명한다).”
Q. 피셔는 이렇게 말했다.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의 공통점은 이상한 것에 대한 사로잡힘이다…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상한 것이다. 그것은 표준적인 감각·인지·경험 너머에 있는 것, 외부에 대한 매혹과 관련이 있다.” 이것이 당신이 예술을 하는 근본적인 동기나 관심인가.
A.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어떤 ‘영역(zone)’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그 영역에서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분류체계가 무너지거나, 흐릿해지거나, 혹은 경계를 넘어 새어나가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결국 관객은 더 복잡한 무언가와 마주하게 된다. 그 목적은 단순히 불편함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질문의 영역’으로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단순히 도발(provoke)하는 것과는 다르다. 도발이라는 것은 오히려 쉽고 매우 진부한 수법일 수 있다. 그런 종류의 도발은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만약 '도발하다'라는 개념을 '무언가를 촉발시키다(trigger)'라는 의미로 본다면, 물론 그 점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9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