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아트페어인 영국의 프리즈가 서울에 상륙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와 손잡고 초대형 미술 장터인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를 연 지 올해로 3회째다. ‘2024 프리즈 서울’ 개최를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패트릭 리 프리즈 서울 대표는 “당초 5년 공동 개최를 합의했지만 앞으로 계속하고 싶다.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재미를 봤다는 거다.
2003년 런던에서 미술잡지 프리즈 관계자와 몇몇 화랑이 합심해 출범시킨 프리즈는 이후 뉴욕, 로스앤젤레스로 진출했다. 이어 아시아 거점으로 서울을 택한 것이다. 가고시안, 하우저 앤 워스, 리슨 등 프리즈 서울에 참가한 세계 정상급 갤러리들은 “서울이 홍콩을 제치고 아시아 미술의 허브가 됐다” “런던보다 서울이 낫다”고 추켜세웠다. 홍콩에는 없는 작가 시장과 민주주의, 관세 면제 등 한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런던에 비해 젊은 컬렉터들의 에너지, 비엔날레 등 다른 볼거리 등이 서울의 매력으로 꼽힌다.
그런데 프리즈 서울이 엄선한 110개 이상 갤러리 중 한국 갤러리는 20곳 남짓에 그친다. 그러니 프리즈 서울은 외국 작가들의 미술 작품을 한국 컬렉터에게 파는 시장이 된 것이다. 안방을 내준 격인가.
사실 키아프는 프리즈보다 먼저인 2002년에 생겼다. 말만 ‘국제’ 아트페어지 화랑협회 회원 중심의 동네잔치 성격이 강했다. 홍콩바젤 출범의 주역인 매그너스 렌프루는 8년 전 가진 인터뷰에서 “키아프가 성공하려면 화랑협회가 주관하는 지금의 형식으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비관론을 증명하듯 키아프리즈 첫해 프리즈가 대박을 터뜨린 것과 달리 키아프는 파리를 날렸다.
그랬던 키아프가 회를 거듭하며 개선되는 모습을 보인다. 올해는 22개국 200여개 갤러리 중 3분의 1을 해외 갤러리로 채우는 등 명실상부하게 국제적인 모습을 보였다. 런던의 워터하우스&도드 등 “한국 미술시장이 좋아 참가를 결심했다”는 외국 화랑이 적지 않았다. 마드리드의 알바란 부르다 갤러리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덴마크 작가 그룹 슈퍼플렉스의 작품을 들고나오기까지 했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키아프리즈의 시대는 토종 작가, 토종 갤러리에 위기이기만 할까. 당장은 그럴 수 있다. 길게 보면 자극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윈-윈’ 가능성이 보인다. 물론 초대형 미술장터에서 한국 화랑들이 설 자리는 좁아졌다. 그만큼 한국 작가의 노출 기회는 줄 것이다. 그럼에도 좋은 화랑, 좋은 작가라면 발탁될 것이다. 프리즈의 경우 10여곳에 불과하던 한국 화랑 수를 올해는 20여곳으로 늘렸다. 국제, PKM 등 메이저뿐 아니라 백아트, 갤러리조선, 신라 등 기획력 좋은 강소 화랑들이 스카우트됐다. 키아프에 탈락한 한국 화랑들 사이에서는 “그럼 우리는 어디 가냐”며 원망이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국제 아트페어라면 해외 갤러리 비중이 3분의 1은 돼야 하는 게 맞는다.
키아프는 국적 면에서 국제성을 갖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수준도 높아졌다. 부스는 시원해지고, 디스플레이는 좋아졌다. “옛날 키아프가 아니다”는 말도 나온다. 프리즈가 가져온 메기효과라고 생각한다.
한국 작가들에게도 위기이긴 하다. 이미 한국 컬렉터들이 프리즈를 돌며 ‘수입 과일’(미술 작품)의 단맛을 단단히 봤으니까. 프리즈의 한국 화랑에 와서 “여기는 외국 작가 작품이 없네”라며 그냥 나가는 컬렉터도 있었다. 하지만 프리즈 때문에 한국에 온 해외 미술계 관계자들이 결국은 한국 작가들과 이들의 작품이 궁금해 키아프를 찾을 수밖에 없고, 실제 그렇다. 키아프의 살길은 온정이 아니라 심사의 엄격함과 프로모션 능력에 달려 있지 않을까.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26030802&code=11171435&cp=nv
세계 3대 아트페어인 영국의 프리즈가 서울에 상륙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와 손잡고 초대형 미술 장터인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를 연 지 올해로 3회째다. ‘2024 프리즈 서울’ 개최를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패트릭 리 프리즈 서울 대표는 “당초 5년 공동 개최를 합의했지만 앞으로 계속하고 싶다.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재미를 봤다는 거다.
2003년 런던에서 미술잡지 프리즈 관계자와 몇몇 화랑이 합심해 출범시킨 프리즈는 이후 뉴욕, 로스앤젤레스로 진출했다. 이어 아시아 거점으로 서울을 택한 것이다. 가고시안, 하우저 앤 워스, 리슨 등 프리즈 서울에 참가한 세계 정상급 갤러리들은 “서울이 홍콩을 제치고 아시아 미술의 허브가 됐다” “런던보다 서울이 낫다”고 추켜세웠다. 홍콩에는 없는 작가 시장과 민주주의, 관세 면제 등 한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런던에 비해 젊은 컬렉터들의 에너지, 비엔날레 등 다른 볼거리 등이 서울의 매력으로 꼽힌다.
그런데 프리즈 서울이 엄선한 110개 이상 갤러리 중 한국 갤러리는 20곳 남짓에 그친다. 그러니 프리즈 서울은 외국 작가들의 미술 작품을 한국 컬렉터에게 파는 시장이 된 것이다. 안방을 내준 격인가.
사실 키아프는 프리즈보다 먼저인 2002년에 생겼다. 말만 ‘국제’ 아트페어지 화랑협회 회원 중심의 동네잔치 성격이 강했다. 홍콩바젤 출범의 주역인 매그너스 렌프루는 8년 전 가진 인터뷰에서 “키아프가 성공하려면 화랑협회가 주관하는 지금의 형식으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비관론을 증명하듯 키아프리즈 첫해 프리즈가 대박을 터뜨린 것과 달리 키아프는 파리를 날렸다.
그랬던 키아프가 회를 거듭하며 개선되는 모습을 보인다. 올해는 22개국 200여개 갤러리 중 3분의 1을 해외 갤러리로 채우는 등 명실상부하게 국제적인 모습을 보였다. 런던의 워터하우스&도드 등 “한국 미술시장이 좋아 참가를 결심했다”는 외국 화랑이 적지 않았다. 마드리드의 알바란 부르다 갤러리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덴마크 작가 그룹 슈퍼플렉스의 작품을 들고나오기까지 했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키아프리즈의 시대는 토종 작가, 토종 갤러리에 위기이기만 할까. 당장은 그럴 수 있다. 길게 보면 자극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윈-윈’ 가능성이 보인다. 물론 초대형 미술장터에서 한국 화랑들이 설 자리는 좁아졌다. 그만큼 한국 작가의 노출 기회는 줄 것이다. 그럼에도 좋은 화랑, 좋은 작가라면 발탁될 것이다. 프리즈의 경우 10여곳에 불과하던 한국 화랑 수를 올해는 20여곳으로 늘렸다. 국제, PKM 등 메이저뿐 아니라 백아트, 갤러리조선, 신라 등 기획력 좋은 강소 화랑들이 스카우트됐다. 키아프에 탈락한 한국 화랑들 사이에서는 “그럼 우리는 어디 가냐”며 원망이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국제 아트페어라면 해외 갤러리 비중이 3분의 1은 돼야 하는 게 맞는다.
키아프는 국적 면에서 국제성을 갖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수준도 높아졌다. 부스는 시원해지고, 디스플레이는 좋아졌다. “옛날 키아프가 아니다”는 말도 나온다. 프리즈가 가져온 메기효과라고 생각한다.
한국 작가들에게도 위기이긴 하다. 이미 한국 컬렉터들이 프리즈를 돌며 ‘수입 과일’(미술 작품)의 단맛을 단단히 봤으니까. 프리즈의 한국 화랑에 와서 “여기는 외국 작가 작품이 없네”라며 그냥 나가는 컬렉터도 있었다. 하지만 프리즈 때문에 한국에 온 해외 미술계 관계자들이 결국은 한국 작가들과 이들의 작품이 궁금해 키아프를 찾을 수밖에 없고, 실제 그렇다. 키아프의 살길은 온정이 아니라 심사의 엄격함과 프로모션 능력에 달려 있지 않을까.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26030802&code=11171435&cp=nv